
축구를 하면서 가장 묘한 긴장감을 느낀 순간은 상대 풀백과의 심리전이었습니다. 제가 투톱으로 뛸 때 상대 레프트백이 우리 윙어를 따라 넓게 나갈지, 아니면 저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쪽에 붙을지 그 찰나의 판단이 곧 득점 기회로 이어졌으니까요. 풀백은 단순히 측면을 지키는 수비수가 아니라 공격과 수비, 중앙과 측면을 모두 연결하는 전술의 균형추입니다. 최근 현대 축구에서 풀백의 역할이 극적으로 확장되면서 팀 전술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포지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풀백의 기본 역할과 현대축구에서의 변화
풀백(Full-Back)은 포백 시스템에서 좌우 측면 수비를 담당하는 선수를 말합니다. 여기서 포백 시스템이란 4명의 수비수가 일렬로 배치되는 전술 형태를 의미합니다. 풀백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상대 윙어의 드리블과 크로스를 차단하고, 공격 시에는 터치라인을 따라 전방으로 올라가 공격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축구에서는 이러한 기본 역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토탈 사커(Total Football) 전술이 보편화된 이후 풀백의 오버래핑(overlapping)을 통한 측면 공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오버래핑이란 후방에 있던 풀백이 앞선 동료를 추월하며 전방으로 치고 나가는 움직임을 뜻합니다. 저도 경기 중 상대 풀백이 오버래핑으로 올라온 순간을 노려 역습 압박을 걸곤 했는데, 그 타이밍을 놓치면 우리 측면이 완전히 열리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현대 풀백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빠른 주력과 순간 가속력 (상대 윙포워드를 따라잡기 위해)
- 뛰어난 체력과 지구력 (90분 내내 공수를 오가며 스프린트 반복)
- 정확한 크로스 능력 (측면에서 중앙으로 공격 연결)
- 전술 이해도와 빌드업 능력 (후방에서 공격 전개 시작)
- 적절한 신체 능력 (경합 상황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2010년대 이후로는 풀백의 전술적 역할이 더욱 세밀해졌습니다. 단순히 측면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으로 침투해 빌드업에 관여하거나, 반댓발 윙어처럼 안쪽으로 파고들어 동료 미드필더를 돕는 중앙 지향적 플레이가 늘어났습니다(출처: 대한축구협회). 제 경험상 풀백이 중앙으로 좁혀 들어올 때 상대 공격수로서는 압박 각도를 잡기가 훨씬 까다로워졌습니다.
현대축구에서 풀백이 중요한 이유
많은 분들이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공격수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저는 실제 경기를 뛰어본 입장에서 조금 다르게 느꼈습니다. 최상위권 팀들의 경기를 분석해보면 공격수와 미드필더, 센터백의 기량은 이미 상향 평준화되어 있지만, 풀백의 질적 차이는 여전히 크게 벌어집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기의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풀백은 필드에서 가장 압박 강도가 낮은 측면 후방에서 공을 받습니다. 이 위치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앞을 바라보며 빌드업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만약 이곳에서 공이 깔끔하게 풀리지 않으면 팀 전체의 공격 전개 속도와 범위가 제한됩니다. 저도 투톱으로 뛸 때 상대 풀백의 빌드업이 둔탁하면 전방 압박만으로도 쉽게 공을 뺏어낼 수 있었습니다.
고급 풀백을 보유한 팀은 다음과 같은 전술적 이점을 누립니다. 첫째, 양쪽 풀백만으로 사이드를 커버하고 나머지 8명의 선수를 중앙에 집중 배치해 중원 장악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둘째, 공격 루트가 다양해져 상대 수비가 예측하기 어려워집니다. 셋째, 윙어가 중앙으로 들어와도 풀백이 측면 공간을 책임지므로 전술 유연성이 극대화됩니다.
실제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최소 A급 이상의 풀백 듀오를 갖추고 있습니다. 리버풀이 클롭 감독 체제에서 유럽 정상에 오른 시기는 앤디 로버트슨과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라는 월드클래스 풀백 라인을 구축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출처: UEFA 공식 홈페이지). 반면 다른 포지션은 스타급인데 풀백만 부족해 큰 대회에서 한계를 보이는 팀도 적지 않습니다.
풀백의 이면: 기피 포지션과 짧은 선수 수명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풀백을 왜 선수들은 기피할까요? 저 역시 유소년 시절 코치님께 "측면으로 내려가서 뛰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너는 공격수로는 부족하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풀백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쉽게 빛을 보기 힘든 포지션입니다.
풀백의 활동 범위는 미드필더만큼 넓지만 연봉은 상대적으로 낮고, 선수 수명은 더 짧습니다. 30세를 넘기면 주력과 지구력 저하로 급격히 기량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레이턴 베인스는 31세 때부터 은퇴까지 부상으로 고생했고, 게리 네빌은 32세부터 후보로 밀렸으며, 마이콘도 정확히 30세 때부터 폼이 급락했습니다. 센터백이나 골키퍼처럼 30대 중후반까지 주전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풀백은 '작은 육각형'이라는 표현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많은 능력이 요구되지만 각 능력의 수준이 중앙 미드필더나 공격수만큼 정교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필드 구석에서 압박을 덜 받기 때문에 퍼스트 터치가 조금 둔탁해도 넘어갈 수 있고, 위치 선정이 세밀하지 못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풀백 전문 선수보다는 중앙에서 밀린 선수들이 포지션 변경으로 풀백을 맡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한국에서도 풀백 기근 현상은 심각합니다. 2018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 당시 와일드카드로 쓸 만한 풀백조차 부족해 윙어 출신인 김진야와 김문환을 내려서 메웠습니다. 2020년대 성인 국가대표팀에서도 레프트백 자원 부족은 고질적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출처: 대한축구협회). 특히 왼발을 쓰는 레프트백은 희소가치가 높아 센터백이나 미드필더를 억지로 왼쪽에 배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투톱으로 뛰면서 풀백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압박 속에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포지션'이라고 느꼈습니다. 윙어를 잡을 것인지, 안으로 침투하는 공격수를 따라갈 것인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기 때문입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경기 흐름을 은근히 바꾸는 숨은 설계자, 그것이 풀백입니다. 앞으로 현대 축구가 더욱 정교해질수록 풀백의 전술적 가치는 계속 높아질 것이고, 이 포지션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시스템이 더욱 절실해질 것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D%92%80%EB%B0%B1(%EC%B6%95%EA%B5%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