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을 뺏긴 직후, 선수들이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에워싸며 달려드는 장면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리버풀 FC 경기를 보다가 이 장면에 완전히 매료됐습니다. 일반적인 수비 전환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었습니다. 공을 잃은 순간이 오히려 또 다른 공격의 시작점이 되는 이 전술, 바로 게겐프레싱입니다. 독일어 'Gegen'(대항)과 영어 'Pressing'(압박)이 결합된 이 용어는 현대 축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술 체계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게겐프레싱의 개념과 전술적 특징
게겐프레싱은 카운터프레싱(Counter-Pressing)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독일어 게겐프레싱을 영어권에서 직역한 표현입니다. 한국어로 풀면 '역압박' 정도가 적절한 번역이 될 것입니다. 이 전술의 핵심은 공 소유권을 상실하는 즉시 그 자리에서 바로 재압박을 가해 공을 되찾는 데 있습니다.
일반적인 전방압박(High Pressing)과 게겐프레싱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명확한 차이가 있습니다. 전방압박은 주로 공격수 라인에서 압박을 시작하는 반면, 게겐프레싱은 공격수부터 수비수까지 전 라인이 압박에 참여하는 전방위적 압박 시스템입니다(출처: 대한축구협회). 독일 축구에서는 전방압박을 '앙그리프 프레싱(Angriff Pressing)'으로 따로 구분하여 부릅니다.
저는 경기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이 차이를 확실히 체감했습니다. 게겐프레싱을 구사하는 팀의 선수들은 공을 잃은 후 5초 이내에 재압박을 시도하며, 이때 4명 이상의 선수가 공 소유자를 에워싸는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난 선수라도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압박이 들어오면 공을 지키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게겐프레싱의 전술적 목표는 단순히 공을 되찾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공을 탈취한 직후 상대 진영이 흐트러진 틈을 타서 즉각적인 역습을 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는 펩 과르디올라의 티키타카와는 다른 접근 방식입니다. 티키타카는 공을 되찾은 후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수비진형을 무너뜨리는 데 집중하지만, 게겐프레싱은 빠른 전환 공격으로 즉시 골을 노립니다.
게겐프레싱의 전술적 운영 방식과 체력 요구사항
게겐프레싱을 실행하는 방식은 크게 개별 게겐프레싱과 집단 게겐프레싱으로 나뉩니다. 개별 게겐프레싱은 공을 잃은 선수 개인이 주도하여 압박을 가하는 방식으로, 조직력이 부족한 팀들이 주로 사용합니다. 반면 집단 게겐프레싱은 여러 선수가 동시에 압박에 가담하여 상대를 포위하는 방식입니다.
현대 축구에서 강팀의 주전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탈압박 능력(Ball Retention)을 갖추고 있습니다. 탈압박 능력이란 압박 상황에서도 공을 빼앗기지 않고 유지하거나 동료에게 안전하게 연결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한두 명의 압박으로는 이런 선수들에게서 공을 빼앗기 어렵기 때문에, 4명 이상이 사방에서 동시에 압박하는 집단 게겐프레싱이 등장한 것입니다.
게겐프레싱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엄청난 활동량 요구사항입니다. 일반적인 축구 경기에서 선수 한 명의 평균 활동량은 8
9km 정도이며, 많이 뛰는 선수도 11
12km 수준입니다. 하지만 게겐프레싱을 적용한 팀의 선수들은 평균 12km 이상을 뛰며, 일부는 15km에 가까운 거리를 이동합니다(출처: 유럽축구연맹 UEFA).
저는 하위권 팀 경기를 분석하면서 이 부분에서 큰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체력은 좋은데 압박 타이밍이 선수마다 제각각인 팀들이 많았습니다. 한 명이 뛰어나가면 뒤는 비어 있고, 수비 라인은 올라오지 않는 식이었습니다. 게겐프레싱은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팀 전체의 약속과 조직력이 필수적이라는 걸 그때 실감했습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 팀보다 훨씬 많은 체력 코치를 두고, 시즌 내내 고강도 지구력 훈련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그가 이끄는 팀들은 시즌 후반까지 높은 압박 강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게겐프레싱의 역사적 발전과 전술적 한계
게겐프레싱의 이론적 기반은 아리고 사키 감독의 사키이즘(Sacchiism)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키는 1980년대 후반 AC 밀란을 이끌며 압박 축구의 개념을 처음 도입했습니다. 그는 "압박축구는 마라도나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전술"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뛰어난 개인 기량을 조직력으로 무력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2000년대 후반에는 펩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에서 티키타카를 통해 압박 개념을 한층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짧은 패스로 점유율을 가져가는 동시에 전방에서 압박하여 공을 빠르게 탈취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다만 과르디올라는 공을 되찾은 후 짧은 패스로 경기를 조율하며 지구력을 회복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위르겐 클롭은 이와는 다른 접근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2008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맡아 게겐프레싱을 본격적으로 도입했습니다. 당시 중하위권에 머물던 도르트문트는 클롭의 지휘 아래 2010-11 시즌과 2011-12 시즌 분데스리가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2012-13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하며 게겐프레싱의 위력을 유럽 무대에 증명했습니다.
클롭은 "우린 1000억짜리 플레이메이커는 못 산다. 대신 게겐프레싱이 우리의 플레이메이커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는 약팀도 조직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강팀에 맞설 수 있다는 철학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게겐프레싱에도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극심한 지구력 소모로 인한 부상 위험이 큽니다. 도르트문트의 마르코 로이스, 일카이 귄도안 등 주전 선수들이 잦은 부상에 시달렸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저는 데이터를 보면서 게겐프레싱 팀들이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압박 성공률이 떨어지는 패턴을 확인했습니다.
둘째, 상대의 카운터 공격에 취약합니다. 게겐프레싱은 수비 라인을 끌어올리고 전방에서 압박하기 때문에, 뒷공간이 항상 노출됩니다. 측면 공간 활용(Width Play)에 능한 팀이나 빠른 윙어를 보유한 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손흥민 선수가 레버쿠젠 시절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보인 것도 이러한 전술적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롱패스 전술에 대한 대응이 어렵습니다.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날아가는 공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습니다. 상대가 라인을 내리고 롱패스로 공간을 공략하면, 게겐프레싱의 효율성은 크게 떨어집니다. 2014-15 시즌 도르트문트가 강등권까지 추락했던 것도 다른 분데스리가 팀들이 이러한 대응 전술을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클롭은 리버풀로 이적한 후 이런 문제들을 보완했습니다. 그는 상황에 따라 압박 강도를 조절하는 존 프레싱(Zonal Pressing) 개념을 도입하여 지구력 관리에 신경 썼습니다. 존 프레싱이란 특정 구역에서만 집중적으로 압박하고 다른 구역에서는 라인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체력 소모를 줄이면서도 핵심 지역에서는 강한 압박을 유지할 수 있는 전술입니다. 그 결과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2019-20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게겐프레싱의 진화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게겐프레싱을 무조건적인 정답 전술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성공하면 상대를 질식시킬 수 있지만, 실패하면 우리 진형이 무너지는 위험한 도박이기도 합니다. 특히 일정이 빡빡한 리그 환경에서는 체력 저하가 곧 압박 퀄리티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실점 기댓값 상승으로 직결됩니다. 경기 흐름과 상대 특성에 따라 압박 강도를 조절하는 지능적인 운영이 필요합니다. 결국 게겐프레싱은 계산된 리스크 관리가 동반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전술입니다. 약팀이든 강팀이든 이 전술을 도입하려면 선수들의 체력과 조직력, 그리고 감독의 전술적 유연성이 모두 갖춰져야 합니다.
참고: https://namu.wiki/w/%EA%B2%8C%EA%B2%90%ED%94%84%EB%A0%88%EC%8B%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