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파리 생제르맹에게 8대 2로 무너진 첼시를 보며, 제가 첼시 팬이라면 잠이 안 올 것 같아요. 솔직히 이건 단순한 경기력 저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보엘리 체제 4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감독이 다섯 번 바뀐 팀, 지금의 첼시는 성적표보다 그 안에 담긴 구조적 균열이 더 무섭습니다.

리더십 부재: 실력 있는 선수가 많아도 팀이 무너지는 이유
제가 주말마다 아마추어 축구팀에서 땀을 흘리며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공을 잘 차는 동생들이 모여도 함께하는 이들이 하나가 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란 거죠. 일반적으로 좋은 선수를 많이 모으면 좋은 팀이 된다고 하는데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아마추어 축구팀에서 직접 뛰어보면서 실감한 건데, 개인기가 출중한 멤버들이 모여도 위기 상황에서 대열을 다시 잡아주는 베테랑이 한 명 없으면 팀은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첼시가 지금 딱 그 모습입니다.
지난 시즌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경기를 직접 관람하며 선수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주목했던 건 전술적 이행도가 아니라 선수들 간의 소통이었습니다. 흐름이 넘어가는 순간,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수비 라인을 다시 세우기보다 각자 제자리에서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띄더군요. 첼시의 경기를 볼 때마다 그 장면이 겹쳐 보입니다.
정신적 지주(spiritual leader)가 되는 선수는 단순히 주장 완장을 차는 선수가 아닙니다. 경기의 흐름이 상대에게 넘어갔을 때 동료들을 독려하고 보드진의 무리한 결정을 현장에서 완충하는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리스 제임스가 그 역할에 가장 가까웠지만, 잦은 부상으로 그 공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엔조, 카이세도, 파머 등이 리더로 거론되지만, 이들은 아직 팀 전체를 하나로 묶는 카리스마보다는 개인 기량에 집중하는 단계에 가깝습니다.
보엘리 체제 이후 영입된 선수 42명 중 절반 이상이 18세에서 20세 사이의 선수들입니다. 팀 평균 연령은 유럽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합니다. 어린 선수단이 나쁜 건 아니지만, 문제는 이 스쿼드가 퇴장 횟수 최다를 기록하고 리드하던 경기에서 무려 19점의 승점을 날려버리는 미숙함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험의 밀도 없이 숫자만 채운 스쿼드의 한계입니다.
보엘리의 'FM(풋볼매니저)'식 운영, 축구는 게임이 아니다
첼시가 유망주 영입에 집착하는 배경을 보면 나름의 논리는 있습니다. 보엘리 구단주는 미국 스포츠 자본주의, 즉 데이터 기반의 선수 가치 산정과 장기 계약을 통한 포트폴리오 운영에 익숙한 인물입니다. NFL이나 NBA에서는 드래프트 제도(draft system)를 통해 유망주를 선점하는 것이 핵심 전략입니다. 리그 전체가 동의한 규칙 아래 하위 팀이 유망한 신인을 먼저 지명하는 시스템을 보엘리가 축구에 대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축구는 드래프트도 샐러리캡(salary cap)도 없는 시장입니다. 구단이 선수단 연봉에 지출할 수 있는 총액의 상한선에 대한 규제가 없는 축구에서는 자금력이 곧 전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금을 잘못 쓰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첼시가 무드리크에 1,700억 원, 기튼스에 1,000억 원, 가르나초 영입 시도에 750억 원을 쏟아부었으면서도 그 값어치를 못 뽑고 있는 게 그 방증입니다.
보엘리 체제 초기 스털링, 포파나, 오바메양 등 검증된 선수들에게 거액을 투자했다가 줄줄이 실패한 경험이 유망주 집착으로 이어진 것도 이해는 됩니다. 유망주는 실패해도 다시 팔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고, 실제로 첼시는 선수 매각을 통한 수익 창출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습니다. 스탬퍼드 브릿지의 한정된 수용 인원과 구장 수익 구조가 재정적 압박을 가중시키는 현실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전략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망주 영입이 저렴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BBC 스포츠에 따르면, 첼시는 지난 시즌 에이전트 수수료로만 1,300억 원을 지출했습니다. 비싼 돈을 쓰고도 가성비 없는 영입이 반복되는 악순환입니다.
첼시 유망주 전략의 핵심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유망주 영입 단가가 예상보다 훨씬 높아 재정 부담이 가중됨
- 어린 선수들을 지도할 검증된 감독을 외부에서 데려오지 않고 내부 승격에 의존
- 단기 성과와 장기 투자 사이에서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양쪽 다 놓치는 구조
- 선수 매각을 통한 수익 창출 전략이 실제로는 정상급 선수 유출로 이어질 위험

7년의 계약은 누구를 위한 프로젝트인가
마레스카 감독은 리그 4위와 컨퍼런스리그 우승, 클럽 월드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냈음에도 시즌 중반에 경질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과를 내는 감독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첼시의 실제 행태는 정반대였습니다. 후임으로 선임된 로세니어 감독은 위성 구단인 스트라스부르 출신의 내부 승격 인물로, 마레스카보다 경험치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선임 과정이 말해주는 건 하나입니다. 첼시 보드진은 감독을 전술가로 보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결정을 현장에서 실행하는 대리인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첼시에서 선수 영입, 매각, 팀 빌딩 전략을 총괄하는 구단의 핵심인 스포팅 디렉터(sporting director)들은 동등한 위치에서 의사결정을 나눠하고 있어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가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디렉터들은 막대한 권한을 가졌지만 감독처럼 성적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선수단이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가르나초는 SNS에서 팀 흔적을 지웠고, 쿠쿠렐라는 공개적으로 팀 프로젝트를 비판했습니다. 주장단인 엔조마저 최근 인터뷰에서 이적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저는 이 상황이 단순한 개인의 불만이 아니라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신뢰 붕괴라고 봅니다. 7~8년짜리 장기 계약은 표면적으로는 안정감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수들에게 창살 없는 감옥이 될 수 있습니다. 팀의 방향이 불분명한데 오래 묶여 있다는 건 선수 입장에서 공포에 가깝습니다.
재정 지표를 보면 상황의 심각성이 더 명확해집니다. 프리미어리그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2년 6개월 동안 첼시는 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적자를 기록했으며, PSR(Profitability and Sustainability Rules), 즉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수익성 및 지속가능성 규정을 충족하기 위해 선수 매각을 서두르는 상황입니다. PRS 규정 때문에 주전 선수를 팔아야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메인 스폰서도 부재한 상황에서 수익 구조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축구는 승리의 기억이 쌓여야 팀의 문화가 됩니다. 그 문화가 있어야 위기에서 선수들이 서로를 믿고 버팁니다. 지금의 첼시는 감독 교체를 반복하며 그 축적의 과정을 매번 초기화하고 있습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좋은 선수는 좋은 선수대로 모여 있지만 '팀'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결국 첼시에게 필요한 건 유망주 한 명을 더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보드진은 한 발 물러서고, 전권을 가진 감독과 팀의 뼈대를 잡아줄 월드클래스 리더를 중심으로 팀을 처음부터 다시 세우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미래를 산다고 하면서 현재를 잃고 있고, 그 미래마저 보장되지 않는 지금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팬들의 퇴진 요구는 계속될 것입니다. 첼시가 다시 팀다운 팀이 되는 날을 기다리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 변화가 빠를수록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첼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BBC와 프리미어리그에서 참고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https://www.bbc.com/sport/football
https://www.premierleagu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