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016 시즌, 손흥민은 리그 전반기 17경기에서 4골 5도움을 기록했지만 선발보다 교체 출전이 많았고, 한때 '400억짜리 거품'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저도 그 시절 새벽마다 중계를 챙겨보던 팬으로서, 그 비난이 얼마나 가혹하게 들렸는지 아직도 기억합니다. 당시 쏟아진 비난은 손흥민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결과였습니다. 그는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축구 언어'에 적응 중이었습니다.

분데스리가와 EPL의 충돌: 왜 '오프 더 볼'이 문제였나?
오프 더 볼(Off the Ball)이란 공을 소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수가 취하는 전술적 움직임 전체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공이 없을 때 어디에 서 있느냐가 바로 오프 더 볼 능력입니다. 축구에서 이 능력이 낮다는 평가는 단순한 기술 부족이 아니라 "경기를 읽는 눈이 없다"는 뜻과 사실상 같습니다. 당시 손흥민에게 쏟아진 비판이 유독 아팠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데이터와 전술적 맥락으로 분석해 볼 때, 당시의 비판은 가혹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세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오프 더 볼 능력이 '원래부터 형편없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으니까요. 진짜 문제는 레버쿠젠 시절 그가 특화되어 있던 트랜지션(Transition) 축구와 포체티노 감독 토트넘의 전술 기반이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점입니다. 트랜지션이란 수비에서 공격, 혹은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되는 짧은 순간의 흐름을 말합니다. 레버쿠젠의 손흥민은 역습 전환 시 공간을 파고드는 데 최적화된 선수였고, 그 맥락에서의 오프 더 볼은 분명히 수준급이었습니다.
반면 포체티노의 토트넘은 높은 점유율과 압박, 세밀한 포지셔닝을 요구하는 포지셔널 플레이(Positional Play)를 근간으로 했습니다. 이는 현대 축구의 거장 펩 과르디올라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가 강조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단순히 많이 뛰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공간 점유'를 목표로 합니다. 역습 공간을 읽는 눈과, 점유 상황에서 동료의 패스 각도를 열어주는 눈은 전혀 다른 종류의 감각입니다. 손흥민은 한 리그에서 다른 리그로 이적한 게 아니라, 사실상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쓰는 축구 시스템으로 뛰어든 셈이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의 경기 템포가 분데스리가보다 얼마나 빠른지는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UEFA 공식 기술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당 평균 스프린트 횟수와 압박 강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EPL은 유럽 5대 리그 중 경기당 물리적 강도 지표에서 상위권에 꾸준히 위치합니다. 이 빠른 템포 속에서 판단 속도가 0.5초만 느려져도, 패스 각도가 막히고 공격 흐름이 끊깁니다. 손흥민이 공을 가진 동료 근처에서 서성이던 모습은 게으름이 아니라, 새로운 속도에 인지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다고 저는 지금도 생각합니다.
이 시기 손흥민의 상황을 보면서, 저는 제 사회 초년생 시절이 겹쳐 보였습니다. 전공 지식이라는 개인 기술은 나쁘지 않았는데, 막상 조직에 들어가니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상사의 입만 바라보며 지시를 기다리던 제 모습이, 공을 든 동료만 쳐다보며 제자리에 멈춰 있던 손흥민과 정확히 겹쳤습니다. 이처럼 축구의 오프 더 볼 능력은 비단 경기장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조직 생활 속 '포지셔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개인 역량과 조직 내 포지셔닝은 완전히 별개의 근육이라는 걸, 그 시절 저도 몸으로 배웠습니다.
손흥민이 겪은 기복의 본질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레버쿠젠 시절 최적화된 트랜지션 기반의 오프 더 볼 능력
- 포체티노 전술의 핵심인 포지셔널 플레이와의 구조적 충돌
- EPL의 높은 경기 템포로 인한 순간 판단 과부하
- 군 문제와 벤치 신세가 겹치며 심화된 멘탈 압박
포체티노의 전술과 '인지 유연성': 손흥민이 한계를 극복한 비결
2016년 1월 레스터 시티와의 FA컵 경기에서 손흥민은 단 8분 출전에 그쳤습니다. 제가 직접 그 경기를 챙겨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 무렵이 사실상 그의 EPL 생활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었고, 언론은 앞다퉈 '아직 EPL 속도에 적응 못 했다'는 평가를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1월 중순 이후부터였습니다. 오프 더 볼 움직임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시즌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변화가 눈에 띄게 쌓였습니다. 4월 2일 리버풀전에서 우측 윙으로 선발 출전했을 때, 저는 화면을 보면서 '이 선수가 예전 그 선수가 맞나' 싶었습니다. 공이 없는 상태에서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동료에게 패스 라인을 열어주는 움직임, 그리고 36라운드 첼시전에서 팀 내 최고 평점을 기록한 득점까지. 그 시즌 막판 몇 경기는, 지금 돌아봐도 가장 극적인 반전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인지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입니다. 영국 스포츠 과학 저널에 따르면, 기존에 학습된 행동 패턴을 상황 변화에 따라 빠르게 수정하고 새로운 규칙을 적용하는 능력이 엘리트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를 가르는 핵심 변수 중 하나로 꼽힙니다. 손흥민이 반 시즌 만에 오프 더 볼 움직임을 바꾼 건, 체력이나 기술보다 이 인지 유연성이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많은 분석가들이 "오프 더 볼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단정 지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어떤 능력이든 '현장에서 틀리면서 수정하는 반복'이 쌓이면 후천적으로 체득됩니다. 손흥민은 포체티노 감독 체제에서 교체 카드로 쓰이면서 선발보다 더 짧고 집중된 시간 안에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 밀도가 결국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제가 직접 그 시즌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느낀 건, 손흥민의 성장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12월부터 미세하게 나아지고, 1월에 주춤하고, 2월에 다시 조금 나아지고, 4월에 폭발하는 흐름이었습니다. 선형적 성장이 아니라, 실패와 수정이 반복되는 비선형적 학습 곡선이었습니다.

결국 2015-2016 시즌의 손흥민을 규정하는 데 가장 적합한 표현은 '실패한 시즌'이 아니라 '전술적 언어를 새로 배운 시즌'입니다. 슈터 전문가에서 공격 전개에도 참여하는 완성형 윙어로 확장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했던 구간이었고, 그 구간을 포기 없이 버텨낸 것 자체가 이후 월드클래스로 도약한 토대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 시절 손흥민의 부진을 단순히 '적응 실패'로 기억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두 리그 시스템의 충돌, 새로운 전술 언어 습득, 그리고 조급함을 눌러가며 쌓은 인지 유연성이 합쳐진 결과가 바로 지금의 손흥민입니다. 혹시 지금 조직에서 '오프 더 볼'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면, 그 말이 곧 한계를 뜻하지 않는다는 걸 이 시즌이 증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구르면서 깨닫는 것, 그게 결국 유일한 정답입니다.
UEFA 공식 기술 보고서와 Journal of Sports Sciences를 참고하여 본인의 생각을 작성했습니다.
https://www.uefa.com/insideuefa/news/, https://www.tandfonline.com/journals/rjsp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