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프로 첫 시즌 루키가 서울의 중원을 책임지고, 부상 공백을 딛고 돌아온 소년이 수원의 침체된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다는 현실 말입니다. 손정범과 김성주, 두 유스 출신 선수가 2026 시즌 K리그에 준 충은 단순한 '유망주 등장' 이상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팀의 자존심이 된 두 선수의 전술적 가치를 뜯어봤습니다.
상암의 중원을 채우는 유스 출신 손정범

얼마 전 상암 경기를 직접 지켜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계 화면에 잡히지 않는 움직임이 오히려 더 인상 깊었습니다. 손정범은 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빈 공간을 메우러 다녔습니다. 마치 팀 전체의 균형을 조율하는 저울 같았습니다.
전술적으로 그는 전형적인 박스 투 박스(Box-to-Box) 미드필더로 기용되고 있습니다. 박스 투 박스란 자기 팀 페널티 박스에서 상대 팀 페널티 박스까지 종횡무진 오가며 수비와 공격 모두에 관여하는 미드필더 역할을 뜻합니다. 아마추어 동호인 대회에서 공을 차 본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전술판에서 보면 쉬워 보이는 그 오프 더 볼(Off the Ball) 움직임이 실제 잔디 위에서는 얼마나 숨이 차는 과정인지 말입니다. 오프 더 볼이란 공을 직접 소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위치 선정과 움직임을 가리키며, 사실 이 능력이 미드필더의 수준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
손정범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김기동 감독이 강조하는 전방 압박(High Press) 시스템을 완벽히 소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방 압박이란 상대 진영 가까이에서 적극적으로 볼을 빼앗는 집단적 수비 전술로, 선수 개개인의 전술 이해도와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너지기 쉽습니다. 184cm의 피지컬에 탈취 후 다이렉트 패스로 이어지는 전환 속도, 거기에 3월 포항전 어시스트와 인천전 선제 헤더골로 이어진 결과물까지, 숫자가 그의 완성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한 가지 지점을 냉정하게 짚어두고 싶습니다. 지금 손정범은 열아홉 살 루키로 서울의 중원 선수들이 갖는 무게감을 온전히 짊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은 이승모, 바베츠, 정승원 등의 선수들이 함께 중심을 잡아주고 있지만, 시즌이 계속 될수록 상대의 견제는 오직 이 신예 미드필더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K리그1은 후반기로 갈수록 체력 소모가 극심해지고 전술적 압박의 강도가 점차적으로 높아지는 양상을 보입니다. 상암의 중앙에서 손정범이 단순한 '빈자리를 채우는 대안'을 넘어 스스로 '새로운 사령관'의 역량을 증명해 낼 수 있을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영역입니다. 지금의 정교함을 시즌 끝까지 유지하며 중원의 주도권을 쥐는 것, 그것이 그를 '반짝 스타'가 아닌 서울의 새로운 전설로 만드는 결정적인 조건이 될 것입니다.
2026 시즌 손정범의 활약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3월 18일 포항전 어시스트로 프로 첫 공격포인트 기록
- 3월 22일 광주전 전반 9분 바베츠의 헤더 패스를 받아 넣은 선제 헤더골, 5-0 대승 견인
- U-23 대표팀 조기 소집, 2026 아시안게임 핵심 자원으로 부상
K리그연맹이 발표한 2025 시즌 통계에 따르면 20세 이하 선수의 K리그1 주전 출전 비율은 전체의 8.3%에 불과합니다(출처: 한국프로축구연맹). 그 좁은 문을 뚫고 서울에서 오래 주전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과 함께 주전을 소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손정범의 전술적 완성도를 가장 잘 설명합니다.
수원 삼성 유스 출신 김성주, 홈구장 빅버드에 등장하다

김성주는 2월 28일 서울 이랜드와의 개막전에서 24,071명의 관중 앞(K리그2 역대 최다)에서 강렬한 데뷔를 했습니다. 그가 뛴 수원의 경기를 분석하다 보면 김성주가 들어오는 순간 경기 흐름이 바뀌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단순히 기술이 뛰어난 선수가 들어오는 것과, 그 선수가 팀의 에너지를 바꾸는 존재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김성주에게는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있습니다.
전술적으로 그는 인버티드 윙어(Inverted Winger) 성향을 보입니다. 인버티드 윙어란 자신의 주발과 반대편 측면에 배치되어 중앙으로 파고들며 슈팅이나 패스를 시도하는 윙어 유형을 가리킵니다. 왼발잡이인 그가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하며 수비 두세 명을 끌어들이는 장면은 K리그2 수비진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숙제입니다. 168cm라는 체구가 오히려 좁은 공간 돌파에 강점이 된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세트피스(Set-piece) 상황에서 그의 왼발은 수원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부상 회복 후 더욱 정교해진 그의 킥 궤적은 과거 수원의 상징과 같았던 선수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수원이 세트피스 득점 비중을 높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느낀 건데, 2023 U-17 아시안컵 준우승 멤버로서 쌓은 국제무대 경험은 그의 침착함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부상으로 U-17 월드컵을 눈앞에서 놓쳤던 아픔이 있음에도 그 시련을 발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아마추어지만 같은 축구인으로서 느끼는 동질감이 있었습니다. 경기 후 엠블럼을 두드리는 세리머니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유스 출신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소속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냉정하게 보면, 지금 K리그2에서 통하는 그의 패턴이 1부 리그의 거친 피지컬 압박 앞에서도 같은 파괴력을 낼 수 있을지는 아직 물음표입니다. 왼발이라는 확실한 무기가 오히려 독이 되지 않으려면, 패턴의 단순화를 경계해야 할 시점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두 선수의 활약은 결국 K리그 유스 시스템이 단순히 선수를 '배출'하는 것을 넘어, 팀의 철학을 체화한 자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입니다. 리그 수준의 차이를 떠나 각자의 위치에서 팀의 자존심이 된 두 사람이 시즌 끝에 어떤 성적표를 받아드는지, 매 주말 운동장에 나가는 저로서는 경기 결과 이상으로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들의 성장이 한국 축구 허리의 단단함을 측정하는 가장 정직한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