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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마가복음 5장] 거라사 광인을 남겨두신 예수님의 큰 그림: 나를 향한 은혜의 확장성

by 데이타 2026. 6. 7.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기적을 볼 때 '치유받은 한 사람'의 변화에 집중하곤 합니다. 비참한 무덤 사이에서 소리를 지르며 쇠사슬도 끊어버리던 거라사 광인이 온전해져 정신이 바르게 된 모습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사건입니다.

하지만 마가복음 5장 17절에서 20절로 이어지는 치유 이후의 사건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단순히 한 사람을 구원하신 것을 넘어 그 지역 전체를 품으시는 예수님의 거대하고도 세밀한 '큰 그림(Big Picture)'과 은혜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데가볼리 땅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지혜를 배우고, 그 은혜가 오늘을 살아가는 '보잘것없는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나누고자 합니다.

1.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배척한 데가볼리 사람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려 할 때, 두려움과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떠나달라고 손짓하는 데가볼리 마을 사람들
예수님의 위대한 능력을 직접 보고도, 데가볼리 사람들은 오히려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서 영적인 무지와 거부감이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 광인을 괴롭히던 더러운 귀신들을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시자,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로 내리 달아 몰사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광경을 본 데가볼리(거라사)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막 5:17)

 

그들은 눈앞에서 광인이 온전해진 위대한 신적 능력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환영하기는커녕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거대한 경제적 손실(돼지 2,000마리)에 대한 아까움과, 자신들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 결합한 결과였습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께 이 마을을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눈앞에 찾아온 구원자를 제 발로 쫓아내는 영적 무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2. 예수님의 거절, 그리고 더 큰 사랑의 시작

이때 치유받은 거라사 광인은 예수님을 따라가기를 간구했습니다. 자신을 지옥 같은 삶에서 건져주신 분이니 당연히 그 곁에 머물며 제자가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막 5:19)

 

예수님은 왜 그의 간청을 거절하셨을까요? 바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했던 그 마을 사람들을 향한 불쌍히 여김(긍휼)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밀어내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들이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돌이킬 수 있는 '살아있는 증거'를 그 땅에 남겨두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덤가에서 미쳐 날뛰던 사람이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자비를 전하는 것만큼 강력한 복음의 메시지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지혜로운 선택 덕분에, 광인은 데가볼리 온 지역에 예수의 큰일을 전파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3. 묵상과 적용: 나 하나만을 보신 게 아니었다

이 본문을 깊이 묵상하며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 역시 영적으로 거라사 광인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습니다. 내 안의 상처와 욕망, 통제할 수 없는 감정에 휘둘려 영적인 무덤 사이를 방황하던 비참한 자였습니다. 참 별 볼 일 없고, 주님 앞에 내세울 만한 능력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자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나를 찾아와 주셨고, 값없는 은혜로 치유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깨달은 귀한 진리는, 예수님이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셨을 때 '나 하나만' 보신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데가볼리 이방 땅의 가장 비참한 광인을 택해 온 마을을 구원하는 통로로 삼으셨듯, 나를 구원하신 데에는 분명한 '확장성'이 존재합니다.

  • 나의 가족: 가장 먼저 복음의 증거가 되어야 할 나의 집
  • 내가 살아온 마을 공동체: 나의 직장, 학교, 친구, 이웃들

주님은 나라는 한 사람의 변화를 통해,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관(돼지 떼)에 묶여 예수님을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내 주변의 '데가볼리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결론: 내 삶의 데가볼리로 나아가며

때로 우리는 내 능력이 부족해서, 과거의 상처가 깊어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댑니다. 그러나 거라사 광인은 신학을 공부한 적도, 화려한 언변을 가진 적도 없었습니다. 그가 전한 것은 오직 하나, "주께서 내게 행하신 일과 나를 불쌍히 여기신 일"이었습니다. 나의 약함과 주님의 강하심이 만난 '경험의 고유성'이야말로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전문성입니다.

 

비록 나는 연약하지만, 나를 택하여 주신 은혜의 크기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를 통해 내 주변의 공동체에 행하실 주님의 놀라운 일들을 기대합니다. 주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셨듯, 아직 주님을 모르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 삶의 자리(데가볼리)에서 주님의 은혜를 묵묵히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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