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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집 구하기'라는 '광풍' 속에서 만난 창조주: 나의 한계 너머에 계신 이를 신뢰하는 법

by 데이타 2026. 6. 6.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거의 안정’은 삶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거대한 문제입니다. 계약 만료일이 다가올수록 치솟는 주변 시세와 턱없이 부족한 내 재정적 현실 사이의 괴리는, 마치 망망대해에서 갑작스럽게 마주한 거대한 폭풍우처럼 우리를 압도하곤 합니다. “내가 머물 곳이 정말 있을까?”라는 근원적인 불안은 순식간에 마음의 평안을 집어삼키고, 당장이라도 배가 뒤집힐 것 같은 공포감을 심어줍니다.

 

마가복음 4장 35절 이하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상황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서 큰 광풍을 만난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어부로서의 모든 경험과 기술이 무용지물이 되는 ‘절대적 한계’를 맞닥뜨렸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 차올라 죽을 것 같은 공포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잠드신 예수님을 깨우며 원망 섞인 부르짖음을 뱉어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정점은 폭풍이 잠잠해진 직후에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한마디로 바람과 바다를 고요하게 하셨을 때, 제자들은 이전의 죽음의 공포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마가복음 4:41)

 

여기서 제자들이 느낀 ‘심히 두려워함’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경외감(Awe, 敬畏)입니다.

경외감의 본질: 인간의 무력함과 창조주의 절대성

흔히 우리는 경외감을 내 감정의 영역에서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성품이나 의도적인 감정 상태라고 오해하곤 합니다. ‘내가 더 경건해져야지’, ‘내가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지’라는 다짐을 통해 경외감을 소유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외감의 판단 기준은 결코 나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경외감은 내가 의도적으로 쥐어짜 내는 감정이 아니라, 내 힘으로는 결코 어쩔 수 없는 극한의 한계 상황 속에서, 그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으시는 창조주의 절대적인 주권을 목격했을 때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영적인 압도감입니다.

 

부활이라는 영광스러운 사건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철저한 단절과 절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온전히 바라보는 ‘경외감’의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무력함과 열악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극한의 상황’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내 힘과 계산으로 모든 일이 척척 해결되는 안전지대(Safe Zone) 안에서는 창조주의 절대성을 경험할 기회가 없습니다. 내 힘이 다하고, 내 지혜가 바닥나며, 내가 가진 자원으로는 눈앞의 현실을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바로 그 지점이,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는 최적의 타이밍이 되는 것입니다.

부동산 현실의 압박, 그리고 믿음의 동반

현재 마주한 주거의 문제는 단순히 ‘살 곳을 찾는 과정’을 넘어, 내 삶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확인하는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입니다. 주변의 높은 집값과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들은 마치 당장이라도 배를 삼킬 듯이 달려드는 파도와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원치 않는 선택을 해야 하거나, 삶의 기반이 흔들릴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은 인간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광풍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위로는, 그 광풍의 현장에 예수님이 함께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지만, 결국 그 광풍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가장 생생하게 배우는 ‘최고의 영적 훈련장’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권능 앞에 벌벌 떠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경외감은 ‘이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결국에는 나를 반드시 도우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견고한 믿음과 동반됩니다. 온 우주를 만드시고 움직이시는 창조주가 나의 아버지가 되시며, 그분이 내 삶의 필요를 가장 잘 알고 계신다는 신뢰가 바탕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환경을 초월하는 진정한 경외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한계 속에서 창조주를 구하는 기도

지금의 열악한 상황과 쫓기는 듯한 마음은,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이 온 만물의 주인이시며 내 삶의 진정한 공급자이심을 삶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두려움과 원망으로 놓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일하심을 목격하는 통로로 삼아야 합니다.

 

집을 구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는 단순히 "좋은 집을 통과하게 해달라"는 조건을 넘어선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내 힘과 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이 현실의 벽 앞에서 나의 무력함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한계 상황 속에서 좌절하지 않게 하시고, 바람과 바다조차 잠잠하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환경에 쫓겨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내 삶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공급하시는지 목격하게 하시고, 내 삶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외감이 회복되는 기회가 되게 하옵소서.”

 

내 계산이 끝나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권능이, 지금 불안해하는 우리의 마음과 거친 삶의 환경 위에도 동일하게 선포되기를 소망합니다. 광풍 너머에서 일하시는 만물의 주인을 기대할 때, 우리는 비로소 두려움을 넘어선 위대한 경외감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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