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적인 빚을 진 자들의 기쁜 반응 (로마서 15:27 관찰)
바울은 로마서 15장에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이방인 성도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기쁘게 연보(헌금)를 보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행위를 설명하면서 매우 독특하고도 강력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로 '빚진 자'라는 표현입니다.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로마서 15:27)
당시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거나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을 겪고 있었습니다(고후 8: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기쁨으로' 물질을 내어놓은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 흘러온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된 '영적인 은혜'에 대해 스스로를 빚진 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에게는 마땅한 반응이 따릅니다. 그것은 나에게 영적인 생명을 나누어 준 대상의 어려움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육적인 것(시간, 물질, 에너지)을 드려 자원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는 의무나 억지가 아닌, 은혜를 경험한 자 안에서 터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신앙의 발현입니다.
2. '자원함'이라는 이름의 세련된 핑계 (개인적 묵상과 고백)
최근 내가 섬기는 교회가 여러 가지 상황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는 기묘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교회의 사정이 어려워질수록 역설적으로 성도들의 '자원하는 심령'과 봉사가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자원함'이라는 단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섬김에서 교묘하게 뒤로 물러나기 위한 방어벽이자 핑계로 삼은 것입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참 많은 곳에 내 손길과 시간이 묻어 있었습니다.
- 청소년·청년부 수련회가 열릴 때마다 땀 흘리며 텐트를 치고 무대를 만들던 수련회 시설팀 섬김,
- 매주 주일이면 교구 식구들과 성도들을 대접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던 주일 식사 섬김,
- 예배의 문을 열며 영적 분위기를 이끌었던 주일 찬양 사역과 토모 찬양 사역까지.
내가 할 수 있었던, 그리고 내게 주어졌던 모든 영역에서 나는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삶에서 교회를 위한 섬김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때 내 마음을 지배했던 생각은 대단히 당당했습니다. '나는 할 만큼 했어. 내 에너지는 고갈되었고, 더 이상은 못 하겠어.'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내 삶에 부딪혔던 거친 파도가 잔잔해지고, 다시 섬길 수 있는 환경적 상황이나 물질적·육체적 여력이 회복되었을 때에도 내 태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말하며 도망쳤습니다. "아직 내 안에 섬기고자 하는 '자원함'이 생기지 않았어. 억지로 하는 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잖아."
내가 내세운 '자원함의 부재'는 얼핏 보면 영적으로 성숙하고 정직한 고백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로마서 말씀을 깊이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 세련된 핑계 이면에 숨겨진 신앙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3. 본질을 잃어버린 봉사, 그리고 은혜의 망각
내가 "자원함이 없다"며 뒤로 물러서려 했던 진짜 이유는 마음의 에너지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통해 복음을 전해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비참했던 옛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게 된 '십자가의 첫 은혜'를 망각해가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내가 과거에 교회를 섬겼던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성격이 부지런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고 감격스러워서, 도저히 내 힘으로는 갚을 길이 없기에 내가 가진 작은 시간과 몸을 드려서라도 그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던 기쁨의 발버둥이었습니다. 그것이 진짜 '자원함'의 정의였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메마르자 섬김은 '행위와 노동'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이제는 쉴 자격이 있다'는 보상심리가 작동했고, 급기야 은혜의 빚을 갚는 자리가 아니라 내 의를 쌓는 자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방인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물질을 보낸 것은 그들에게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표현할 길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 섬김은 내 여유의 산물이 아니라, 은혜에 감격한 자의 마땅한 반응입니다. 나 역시 섬김의 자리를 회복함으로써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그리고 그 은혜를 기뻐하고 있음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 증명해야 합니다.
4. 삶 적용: 잃어버린 은혜의 목록을 다시 세어보기
당장 이번 주부터 거창한 사역을 다시 시작하거나 모든 봉사의 자리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성급한 다짐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서포트는 또다시 피로감과 원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섬김은 '내 영혼의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자 '받은 은혜를 기억해 내는 것'입니다.
언제든 주님이 부르실 때, 혹은 교회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기쁨으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할 수 있도록, 이번 주간에는 조용히 시간을 구별하여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적용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 은혜의 연대기 작성하기: 예수님을 처음 만나 변화되었던 순간부터, 교회를 통해 누렸던 영적 성장의 과정들을 노트에 하나씩 기록해 보기.
- 감사 목록 구체화하기: 당연하게 여겼던 교회의 예배 환경, 목회자와 지체들의 돌봄, 그리고 지금 누리고 있는 평안이 누구로부터 흘러왔는지 깊이 묵상하고 정리하기.
- 묵묵한 기도의 섬김 시작하기: 겉으로 드러나는 사역의 자리에 서기 전, 먼저 기도가 필요한 교회의 영역들과 어려움을 겪는 지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매일 10분씩 중보기도로 섬기기.
이방인의 육적인 섬김이 예루살렘 교회를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듯, 나의 회복된 감사와 작은 섬김이 교회를 세우는 초석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빚진 자'의 마음으로, 다시 그 은혜의 바다로 걸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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