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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로마서 13장 묵상] 악한 권세에도 복종하라? 로마의 기독교 핍박 역사와 교회의 회복을 향한 소망

by 데이타 2026. 6. 15.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으며 가장 큰 내적 갈등을 겪는 구절 중 하나가 바로 로마서 13장 1~3절입니다.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며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심지어 권세자들이 선한 일에 대해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해 된다며, 그들이 선을 장려하는 대리자처럼 묘사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마주할 때 한 가지 거대한 의문이 머리를 스칩니다. "이 편지가 쓰일 당시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잔인하게 핍박하던 권세가 아니었는가?"

 

선을 행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처형했던 국가 권세에 복종하라는 바울의 권고는, 어쩌면 당대 크리스천들에게 너무나 가혹하고 억울한 명령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이 말씀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 교회가 마주한 아픔과 회복의 소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개인적인 묵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1. 관찰: 권세에 복종하라는 명령과 로마의 핍박이라는 모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1-2)

 

바울의 이 서신을 받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은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선'이 아닌 제국의 질서를 흔드는 '악'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왜 기독교를 '악'으로 보았는가?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정직하고 선하게 살아가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권력자들이 기독교를 핍박한 이유는 그들의 눈에 기독교가 '반사회적이고 반국가적인 집단'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 황제 숭배 거부: 로마는 제국의 결속을 위해 황제를 '주(Kyrios)'로 숭배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었습니다. 이는 로마 권력자들에게 국가에 대한 반역이자 불충으로 해석되었습니다.
  • 문화적 이질감: 다신교 사회였던 로마에서 오직 한 분의 신만 섬기는 기독교는 '무신론자'라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또한 성찬식을 "살과 피를 먹는 행위"로 오해한 이방인들은 기독교를 기괴한 비밀 결사대로 보았습니다.

결국 로마의 권세자들은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기독교를 '악'으로 판단했고, 그에 따른 두려움과 공포로 보복하고 핍박했습니다. 말씀만 봐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실의 모순이 여기에 있습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선을 악으로 오해하고 자신들을 죽이려는 그 권세마저도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이기에 거스르지 말고 복종하라고 명령합니다.

2. 묵상과 연결: 우리 교회의 아픔, 그리고 세상의 심판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최근 제가 몸담고 있는 우리 교회가 겪은 커다란 아픔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세상으로부터 오해를 받고, 세상의 법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처벌을 받는 가슴 아픈 과정을 지나왔습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이신 목사님께서는 교회를 대표하여 세상 법의 심판을 묵묵히 받으셨고, 그 법에 복종하셨습니다. 성도의 한 사람으로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고, 마음 한편에는 억울함과 원망, 그리고 교회의 미래에 대한 깊은 절망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왜 이런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인간적인 생각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마서 13장 말씀은 저의 시선을 인간적인 억울함에서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로 옮겨놓았습니다. 바울의 권고대로, 억울한 오해와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칼을 들어 맞서 싸우지 않고 로마 법에 복종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3. 역사적 반전: 핍박을 이겨낸 사랑과 선행의 힘

역사는 우리에게 놀라운 반전을 보여줍니다. 로마의 잔인한 탄압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무력으로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도리어 묵묵히 로마 법을 정직하게 지키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삶으로 증명해 냈습니다. 이 위대한 반전의 정점에는 역사적인 '전염병 사건'이 있었습니다.

역사가 기록한 기독교의 반전 2세기 후반(안토니누스 역병)과 3세기 중반(키프리아누스 역병) 제국 전역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았을 때, 로마의 귀족들과 이교도 의사, 심지어 가족들마저 감염이 두려워 환자들을 길거리에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자신들을 핍박하던 이웃들을 돌보았고, 버려진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내주었습니다. 그들은 감염되어 죽어가는 순간에도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았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자신들이 '악'이라고 규정했던 기독교인들이, 실제로는 제국에서 가장 '선하고 사랑이 넘치는 이들'임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무력과 칼이 아닌, 정직한 법 복종과 목숨을 건 사랑의 선행이 로마인들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결국 이 거대한 삶의 증거들이 쌓여,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가 공인되고, 나아가 로마의 국교로 승인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4. 소망과 결단: '성도'로서 걸어가야 할 길

사실 저는 최근까지 우리 교회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지, 예전처럼 일어설 수 있을지에 대해 마음속으로 깊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기대도, 소망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마 제국 한복판에서 기독교가 이뤄냈던 그 위대한 역사적 반전을 바라보며, 제 안에 새로운 소망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로마 교회가 이뤄낸 반전의 기적 이면에는, 핍박 속에서도 말씀대로 살아내고자 했던 성도들의 눈물 어린 믿음과 사랑의 선행이 동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가 마주한 오해와 처벌을 깨뜨리는 방법 역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비난에 변명하거나 세상의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처벌과 법을 감당하며 삶으로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로서 제 삶의 자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내가 속한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오해와 억울함이 찾아올지라도 바울의 권면을 기억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질서에 복종하며, 내게 주어진 삶의 예배를 성실히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든 간에, 끝까지 사랑을 베풀고 선행을 멈추지 않는 삶을 살아내고자 힘쓰겠습니다.

 

로마에 허락하셨던 그 반전의 기적이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동일하게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낮아짐과 순종, 그리고 사랑의 삶을 도구로 쓰셔서 우리 교회에 찬란한 회복의 기적을 행하실 그날을 소망합니다.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믿으며, 오늘도 성도로서 묵묵히 선한 걸음을 내딛기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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