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가장 던지기 쉬운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자신을 배신할 가룟 유다를 제자로 세우셨을까?"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주님께서 결말을 알고도 그를 택하신 사건 뒤에는, 단순한 구속사의 진행을 넘어선 우리를 향한 놀라운 사랑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3장 1절에서 19절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배신자 유다를 제자로 삼으신 진짜 이유와 오늘날 우리가 넘어졌을 때 주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돌이킴'의 은혜가 무엇인지 깊이 있게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3장 19절: 다 아시면서도 택하신 주님
마가복음 3장 13절부터 19절은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고, 그중 특별히 열두 제자를 세우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명단의 가장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됩니다.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막 3:19)
이 짧은 한 구절은 우리에게 깊은 충격을 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우실 때 이미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이나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다 아시면서도 주님은 그를 사랑하셨고, 그를 제자의 무리에 포함시키셨으며, 동궤를 맡기실 만큼 신뢰를 보여주셨습니다.
과거의 저는 이 본문을 보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유다라는 악역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성취되려면 누군가는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주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는 훨씬 더 가슴 아프고도 거대한 '기다림의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다에게 주어진 두 번의 기회, 그리고 안타까운 선택
예수님은 유다가 파멸의 길로 걸어가는 것을 방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가 스스로 돌이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셨고, 경고하셨으며, 기회를 주셨습니다.
첫 번째 기회: 배신하기 전의 경고
십자가에 잡히시기 전,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는 자리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버리리라(팔리라)"*라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유다의 죄를 폭로하여 망신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유다가 마음을 품고 행동으로 옮기기 직전, 그의 양심을 깨워 돌이키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마지막 간곡한 경고이자 사랑의 손길이었습니다.
두 번째 기회: 배신한 후의 회개의 기회
유다는 끝내 은 삼십에 스승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정죄당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는 뒤늦게 후회했습니다. 대제사장들에게 돈을 도로 갖다 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유다의 결정적인 비극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그는 '후회'는 했지만 '회개'는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나머지, "예수님조차도 이 죄는 용서하지 못하실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해 버린 것입니다. 결국 그는 주님께 나아가 용서를 구하는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결말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팔기 전에도, 그리고 팔고 난 후에도 유다에게는 돌이킬 기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는 치명적인 죄를 지었지만, 그는 통곡하며 주님께 돌이켰기에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쳐버린 유다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깝고 슬프셨을까요?
나를 다 아시고도 부르신 예수님의 가장 큰 사랑, '돌이킴'

이 가룟 유다의 이야기는 단순히 2,000년 전 한 배신자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거울을 보듯, 이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내가 앞으로 지을 죄, 연약함, 반복해서 넘어지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부르셨고, 자녀 삼아 주셨으며, 오늘 이 자리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아시면서도 부르신 그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바로 '돌이킴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죄에 넘어집니다. 그때마다 사탄은 가룟 유다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정죄감을 불어넣습니다.
- "네가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냐?"
- "너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어."
- "또 똑같은 죄를 지었으니 이제 하나님도 너를 포기하셨을 거야."
이러한 사탄의 음성에 속아 넘어가면 우리는 자책하고, 낙심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결코 스스로를 학대하거나 주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아무리 추하고 부끄러운 모습일지라도, 그 자리에서 즉시 '돌이켜' 일어나 주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내가 깨끗할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더럽고 추할 때도 나를 덮어주시는 완전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적용: 로마서 5장 8절 암송과 마음 지키기
예수님의 이 거대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로마서 5장 8절 말씀을 붙잡고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오늘의 다짐과 적용
- 로마서 5:8 말씀 매일 암송하기: 아침에 눈을 떴을 때와 밤에 잠들기 전, 이 말씀을 소리 내어 암송하며 내가 어떤 사랑을 받은 존재인지 끊임없이 뇌리에 새기겠습니다.
- 자책 대신 주님께 나아가기: 죄에 넘어지거나 연약한 모습을 발견할 때, 사탄이 주는 정죄감에 갇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주님, 제가 또 넘어졌습니다. 저의 이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주님의 보혈로 씻어주세요"라고 즉시 돌이켜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 기회를 놓치지 않기: 성령님께서 마음속에 가책을 주시거나 경고의 음성을 들려주실 때, 유다처럼 고집 피우지 않고 그 즉시 순종함으로 돌이키는 삶을 살겠습니다.
우리를 다 아시면서도 부르신 주님의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자책과 낙심의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기다리시는 예수님께로 돌이키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예수님의 광야 훈련: 사역의 준비는 계획이 아니라 정체성의 확립이다 (0) | 2026.05.30 |
|---|---|
| 세상의 경험보다 안전한 말씀의 지혜: 사도행전 27장 묵상과 삶의 적용 (0) | 2026.05.29 |
| 내 감정보다 말씀을 앞세우는 방법, 사도 바울에게 배우는 갈등 관리의 지혜 (0) | 2026.05.28 |
| [사도행전 22장 묵상] 상처 가득한 내 과거가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인 이유 (0) | 2026.05.27 |
| 고난의 순간,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개입하시는 방법 (사도행전 21장) (0) | 2026.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