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성경을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빌라도는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도, 대제사장이 순수한 종교적 이유가 아닌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고발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침묵했고, 결국 군중의 요구에 굴복했습니다.
오늘 마가복음 15장 1~20절을 묵상하며, 그 빌라도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알고 있었다: 본문 마가복음 15: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대제사장이 율법적 근거가 아닌, 자신의 입지를 위협하는 예수님을 향한 시기심으로 고발했다는 사실도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진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권력을 잃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군중의 반발, 황제에게 전해질 소문, 자신의 지위에 생길 균열 — 이 모든 것을 저울질한 끝에 그는 진실 대신 자기 보호를 선택했습니다.
나에게도 빌라도의 모습이 있다
이 말씀 앞에서 저는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반복되는 갈등 상황입니다. 비슷한 패턴이 계속 반복될 때, 저는 어느 순간부터 그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저러네"하며 한 귀로 흘려버리고, 감정을 차단하고, 회피하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솔직히 들여다보면, 그 갈등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 상한 지체보다 내 시간과 감정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고, 문제의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면서 빠르게 마음의 편안함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것이 그대로 겹쳐 보였습니다.
빌라도도 당장은 편했을 것입니다. 군중을 달래고, 대제사장의 요구를 수용하고, 그 자리를 지켰으니까요. 그러나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는 역사에 새겨진 이름 — 빌라도 — 이 '예수를 십자가에 넘긴 자'로 기록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장의 편안함이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닙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 그 의지를 드리기로
갈등 속에서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그 진실이 나의 불편함을 동반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번 묵상을 통해 한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최근 갈등 상황에서 지체가 제게 말해준 저의 연약한 부분을 스스로 솔직하게 평가해 보는 것입니다. 상대의 문제점만 보며 빠르게 마음을 닫는 것이 아니라, 그 말 안에 내가 훈련받아야 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내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를 드릴 때 주어진다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그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빌라도는 진실을 알았지만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그를 기억합니다.
나는 오늘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갈등 앞에서, 불편함 앞에서,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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