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해리 케인이 풀백 위치까지 내려가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당황했습니다. 뮌헨에서 케인을 영입한 이유는 골을 넣으라고 데려온 건데, 왜 저 위치에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 경기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제가 직접 아마추어 경기를 뛰며 느낀 경험과 겹쳐지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케인의 움직임은 단순한 포지션 이탈이 아니라, 팀 전체를 살리기 위한 계산된 선택이었습니다.
케인이 내려가는 진짜 이유: 빌드업부터 역습까지
케인이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까지 내려가는 첫 번째 이유는 후방 빌드업(build-up)을 돕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빌드업이란 상대의 압박을 풀고 공격을 전개하기 위해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볼을 연결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상대 팀이 뮌헨의 센터백과 중앙 미드필더를 강하게 전방 압박할 때, 케인이 아래로 내려와 볼을 받아주면 압박이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제가 예전에 속했던 팀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팀의 최전방 공격수가 고립되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그 선수가 스스로 내려와 빌드업에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공격수가 저기까지 내려오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그 선수가 내려와 공을 받아주니 상대 수비 라인이 자연스럽게 흔들렸고, 그 틈을 이용해 윙어들이 침투하면서 오히려 더 좋은 찬스가 만들어졌습니다.
케인의 하강 움직임은 상대 수비 조직을 무너뜨리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케인이 빌드업에 관여하며 계속 내려오면 상대 센터백은 케인을 따라 내려오게 되고, 이때 빈센트 콤파니 감독은 공격형 미드필더인 그나브리를 함께 내려보내 빌드업을 풀어냅니다. 이로 인해 상대 박스 앞 중앙 공간, 즉 존 14(Zone 14)가 비게 됩니다. 존 14란 페널티 박스 바로 앞 중앙 지역을 의미하며, 축구에서 가장 위협적인 공격 찬스가 만들어지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으로 윙어들이 침투하거나 풀백인 라이머가 침투하여 케인의 롱패스를 받아 득점 기회를 창출합니다.
케인의 롱킥 능력은 정말 압도적입니다. 70m 대각선 롱킥을 정확하게 연결시키는 능력은 축구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한데, 사비 알론소, 스티븐 제라드, 폴 스콜스 같은 전설적인 미드필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입니다. 케인이 후방에서 볼을 지킨 뒤 바로 역습 찬스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이 롱킥 능력 덕분입니다.
역습 상황에서 케인이 박스 안에 뒤늦게 도착하는 것도 계산된 움직임입니다. 케인 본인도 인터뷰에서 역습에 뒤늦게 합류하면 자유롭고 공간이 생긴다고 언급했습니다(출처: UEFA 공식 인터뷰). 최전방에 머무를 경우 상대 센터백의 견제가 심하고 공간이 좁지만, 뒤늦게 침투하면 넓은 공간을 활용하여 수비의 방해 없이 득점할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제가 경기 분석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단순히 포지션만 지키는 선수보다 경기 흐름을 읽고 필요한 위치로 이동하는 선수가 팀 전체를 살린다는 것입니다. 케인의 움직임을 보면 "포지션"이 아니라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스트라이커지만, 팀이 필요할 때는 미드필더가 되고, 심지어 수비수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케인이 풀백처럼 보이는 순간이 많은 것은 단순히 빌드업을 돕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빌드업을 돕다가 볼을 뺏겼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수비에 가담하며, 라이머와 같은 풀백이 최전방으로 침투하여 비어있는 수비 공간을 커버하는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책임감 있는 플레이는 콤파니 감독이 케인에게 이 역할을 맡기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32세 케인의 득점력: 세트피스와 전술적 선택
케인이 경기장을 넓게 누비면서도 리그 31골, 챔피언스리그 10골이라는 놀라운 득점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전술적 선택에 있습니다. 뮌헨이 상대를 가둬놓고 공격할 때, 즉 상대가 로우 블록(low block)을 형성할 때는 9번 자리에 머물며 득점에 집중합니다. 로우 블록이란 상대 팀이 자기 진영 깊숙이 수비 라인을 낮추고 밀집 수비를 펼치는 전술을 의미합니다. 이때는 후방에 충분한 선수들이 있어 빌드업에 지장이 없으므로, 케인은 헤더, 원터치 마무리, 혹은 스스로 슈팅 공간을 만드는 등 자신의 주특기를 활용합니다.
케인의 득점에는 세트피스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전체 47골 중 페널티킥 15골, 코너킥이나 프리킥 상황에서의 골이 7골로, 총 22골이 세트피스에서 나왔습니다. 탁월한 페널티킥 능력과 헤더 능력을 바탕으로 세트피스 상황에서 주요 타깃이 되어 많은 골을 성공시킵니다. 2024-25 시즌 유럽 주요 리그 득점 현황을 보면, 케인의 득점력은 단순히 양적인 측면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최상위권입니다(출처: UEFA 공식 통계).
케인이 이 역할에 적합한 이유는 몇 가지 특별한 능력 때문입니다:
- 뛰어난 볼 키핑력으로 볼을 뺏기지 않고 지켜내며, 파울도 잘 얻어냅니다
- 최정상급의 연계력과 탈압박 능력을 갖추고 있어 단순히 볼을 지키는 것을 넘어 돌아서서 수비를 벗겨내는 플레이까지 가능합니다
- 압도적인 롱킥 능력으로 70m 대각선 패스를 정확하게 연결시킵니다
- 유스 시절 미드필더로 뛰었던 경험이 있어 중원에서의 플레이에 익숙합니다
제가 직접 경기를 분석하면서 느낀 점은, 케인의 속도가 느린 것이 오히려 이 전술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치고 나가는 움직임은 빠르지만, 넓은 공간에서 스프린트하는 속도는 루이스 디아스나 올리세 같은 윙어들에 비해 아쉽습니다. 따라서 케인은 내려와서 롱킥으로 빠른 선수들에게 볼을 연결하고, 그들이 침투하는 형태의 공격이 더 효과적입니다.
콤파니 감독은 선수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전술을 설계했습니다. 루이스 디아스나 올리세가 드리블 시간이 긴 편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이들이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흔드는 동안 케인이 박스 근처에 도착하여 연계 플레이를 통해 찬스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올 시즌 뮌헨이 유럽 전체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팀이 된 주요 원동력입니다.
다만 저는 이 전술이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인이 내려오면서 팀 전체의 빌드업과 공격 전개는 훨씬 매끄러워지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박스 안에서 마무리할 선수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이 단점이 더 크게 드러납니다. 상대 수비는 더 조직적이고 강하기 때문에, 케인이 아래에서 볼을 만지다 보면 정작 결정적인 위치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올 시즌 케인의 과도한 활동량은 무시알라의 부상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케인 본인도 함께 뛰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내려갈지가 결정된다고 언급했습니다. 무시알라가 부상 없이 뛰었다면, 그가 볼을 받아 돌파하며 케인에게 찬스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고, 케인은 박스 안에서 득점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케인의 플레이를 보며 가장 아쉬운 점은 체력과 커리어 관리입니다. 32세인 케인이 이처럼 계속 뛴다면 기량 하락이 빨리 오거나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500골 달성 이후 득점 페이스가 더 빨라졌는데, 이는 수비 가담을 줄이고 골대 가까이에서 득점에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케인도 지금의 플레이를 유지하되, 경기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내려오는 방향이 더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모든 상황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압박이 강할 때나 특정 전술 상황에서만 활용하는 것입니다.
케인은 현재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며 즐겁게 플레이하고 있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역할을 할 때 더 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개인적으로는 케인이 좋아하는 역할로 뛰면서도 많은 골을 넣고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발롱도르까지 수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결국 케인의 진짜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언제 어디로 움직이느냐를 아는 지능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스트라이커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