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 경기를 보다 보면 한 명이 완장을 차고 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는 한 시즌 동안 주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 자리가 단순히 경력이나 실력으로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주장은 경기장 안팎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고, 그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무거웠습니다.
주장 완장의 의미와 공식 책임
축구에서 주장이 차는 완장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2024/25 시즌부터 국제축구평의회(IFAB)는 각 팀이 반드시 주장을 지정하고, 주장은 완장으로 식별되어야 한다고 명문화했습니다(출처: Laws of the Game). 여기서 IFAB란 축구 경기 규칙을 제정하고 관리하는 국제기구로, 전 세계 축구 경기의 기준을 정하는 곳입니다.
주장의 공식 책임은 경기 규칙상 명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경기 시작 전 코인 토스에 참여해 공격 방향이나 킥오프 선택권을 결정하고, 승부차기 전에도 동전 던지기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주장이라고 해서 심판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특별한 권한이 법적으로 주어진 건 아닙니다. 다만 심판이 팀 전체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때 주장을 통해 전달하는 게 관례입니다.
저는 직접 경기를 뛰면서 주장이 심판과 대화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는데, 그 순간이 단순히 항의가 아니라 팀 전체를 대변하는 역할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실제로 2023-24 시즌부터 프리미어 리그는 주장이 아닌 선수가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하면 즉시 경고를 주는 규정을 도입했고, 2025-26 시즌부터는 주장이 아닌 선수가 심판에게 항의하는 것 자체를 금지했습니다(출처: Premier League). 이는 주장의 책임을 더욱 명확히 한 조치입니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도 주장의 몫입니다. 1999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클럽 캡틴 로이 킨은 징계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날 경기에 뛴 매치 캡틴 피터 슈마이켈이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이처럼 클럽 캡틴과 매치 캡틴은 구분되며, 실제 경기에서 완장을 찬 선수가 그날의 주장 역할을 수행합니다.
클럽 캡틴과 바이스 캡틴의 차이
축구팀에는 여러 종류의 주장이 있습니다. 클럽 캡틴(Club Captain)은 시즌 전체를 대표하는 주장으로, 보통 감독 지명이나 선수단 투표로 선출됩니다. 저희 팀 주장도 시즌 시작 전 투표로 뽑혔는데, 그 친구는 유소년 시절 엘리트 축구를 했던 경험이 있었고 무엇보다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바이스 캡틴(Vice-Captain)은 부주장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주장이 부상이나 징계로 경기에 나서지 못할 때 그 역할을 대신하는 선수입니다. 바르셀로나의 로날드 아라우호, 바이에른 뮌헨의 요수아 키미히, 레알 마드리드의 페데리코 발베르데가 대표적인 바이스 캡틴입니다. 일부 팀은 3주장, 4주장까지 지정해두기도 합니다. 바르셀로나는 프렌키 더 용을 3주장, 하피냐를 4주장으로 두고 있으며, 바르셀로나 페메니는 2015-16 시즌에 무려 6명의 주장을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매치 캡틴(Match Captain)은 그날 경기에서 실제로 완장을 차고 뛰는 선수를 말합니다. 라이언 긱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현역 내내 바이스 캡틴이었기 때문에 클럽 캡틴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지만, 클럽 캡틴이 출전하지 못하는 경기에서는 매치 캡틴으로 완장을 찼습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주장직이 고정된 자리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뀐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K리그에서도 최근 바이스 캡틴을 2명씩 두는 팀이 늘었습니다. U-22 의무 출전 규정 때문에 젊은 선수들을 대표하거나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해진 겁니다. 전북 현대는 2022 시즌에 주장 홍정호를 유임하고 부주장에 베테랑 이용과 97년생 백승호를 함께 지명했습니다. FC 서울은 2024 시즌 주장 기성용, 부주장 조영욱으로 시작했는데 두 사람 모두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제시 린가드가 한동안 완장을 찼고, 조영욱이 복귀한 뒤에는 출전 여부에 따라 완장을 주고받았습니다.
상무 축구단은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주장단을 상·하반기에 두 번 선출하며, 주장이 분대장을 겸임하기 때문에 다른 팀보다 책임이 무겁습니다. 저는 이런 구조를 보며 주장이 단순히 명예직이 아니라 실질적인 역할과 부담을 동시에 지는 자리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주장의 진짜 역할은 경기장 밖에 있다
주장의 역할은 규칙에 명시된 것보다 훨씬 넓습니다. 저희 팀 주장은 항상 가장 먼저 운동장에 나왔습니다. 훈련 시간이 다가오면 흩어진 선수들을 모았고, 감독님이 지적한 부분은 본인이 먼저 실천했습니다. 팀 규칙을 누구보다 엄격하게 지켰고, 친한 친구라도 지각하면 분명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소리만 큰 주장이 아니라 행동으로 신뢰를 쌓는 사람이었습니다.
경기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뛰며 끊임없이 소리쳤습니다. 풀백이 올라가면 그 빈 공간을 커버했고, 공격이 막히면 템포를 조절했습니다. 누군가 실수해도 "괜찮아, 다시 하자"라고 외쳤고, 그 한마디에 분위기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주장이 팀의 감정선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첫 패배를 당했던 날입니다. 아마추어 본선 대회 진출이 걸린 경기였는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몇몇은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저도 허탈했습니다. 그때 주장이 눈가가 붉어진 채로 우리를 한 명씩 일으켜 세우며 말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야. 오늘 진 거 인정하자. 대신 여기서 멈추지 말자." 패배를 덮지 않고, 회피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그 패배를 다음의 이유로 만들자고 했습니다.
주장은 감독과 선수 사이의 교두보 역할도 합니다. 일부 클럽에서는 주장이 감독과 함께 선발 라인업을 논의하기도 합니다. 젊은 선수들의 멘탈 관리도 주장의 몫입니다. 현대 축구는 SNS와 미디어 노출이 많아 선수 개인의 감정 기복이 팀 분위기에 영향을 주기 쉽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장이 반드시 가장 뛰어난 선수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가장 책임을 먼저 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국제 대회에서도 주장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주장 브라이언 롭슨이 부상당하고 부주장 레이 윌킨스가 퇴장당하자, 골키퍼 피터 쉴튼이 나머지 경기에서 주장을 맡았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독일은 미하엘 발락이 부상으로 빠지자 필립 람이 주장을 맡았고, 람이 병으로 마지막 경기에 못 나가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완장을 찼습니다. 람은 이후 발락이 돌아와도 주장직을 넘기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은퇴할 때까지 독일 대표팀 주장을 계속했습니다.
현대 축구에서 주장은 단순히 완장을 차고 심판과 대화하는 상징적 존재를 넘어섭니다. 과거에는 카리스마와 연륜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전술 이해도와 소통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빌드업과 압박 구조가 세밀해진 지금, 주장은 포지션 간 간격을 조율하고 라인을 올릴지 내릴지 판단을 공유하며 동료의 심리 상태까지 관리해야 합니다. 감독의 지시가 즉각적으로 전달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장은 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상황을 읽고 팀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결고리입니다.
저는 주장을 맡아본 적은 없지만, 한 시즌 동안 진짜 주장을 지켜보며 많은 걸 배웠습니다. 승리의 순간보다 패배의 순간에 앞에 서는 사람, 그것이 현대 축구에서 진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장은 완벽한 선수가 아니라 팀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입니다. 그 자리는 경력이나 실력만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책임감과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자리였습니다.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Captain_(association_football)
https://www.theifab.com
https://www.premierleagu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