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빅클럽들이 매년 여름 아시아를 찾는 이유가 단순히 팬 서비스 때문일까요? 일반적으로 많은 분들이 '팬들을 위한 친선 경기'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직접 경기장에서 경험하고 분석해 본 결과 그 이면에는 훨씬 더 치밀한 비즈니스 전략이 숨어 있었습니다. 지난여름 토트넘과 바르셀로나의 한국 경기를 직접 관람하면서, 단순한 축구 경기 이상의 거대한 상업적 메커니즘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프리시즌 아시아 투어의 역설적 선택
프리시즌 기간 동안 유럽 빅클럽들이 아시아를 찾는 것은 전술적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불리한 선택입니다.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으로 인한 시차 적응 문제, 동남아시아 특유의 고온 다습한 기후, 그리고 유럽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훈련 시설 등이 선수 컨디션 관리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프리시즌이란 정규 시즌 시작 전 팀 전술을 점검하고 선수들의 체력을 끌어올리는 핵심 준비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 시기에 최적의 환경에서 훈련하는 것이 시즌 성적에 직결되는데도, 빅클럽들은 기꺼이 아시아행을 선택합니다.
제가 직접 경기장에서 본 선수들은 분명 100% 컨디션이 아니었습니다. 경기 템포도 정규 시즌보다 느렸고, 주전 선수들의 출전 시간도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경기장을 가득 메운 5만 명의 관중과 경기 전후로 이어진 각종 공식 행사들을 보면서, 이들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출처: 대한축구협회).
스포츠 비즈니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럽 클럽들이 아시아 투어에서 얻는 직접적인 수익은 전체 목표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진짜 목표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브랜드 가치 상승과 이를 기반으로 한 중계권 및 스폰서십 계약입니다.
아시아 시장 공략의 핵심 수익 구조
유럽 빅클럽들의 아시아 투어 수익 모델은 단기 수익과 장기 수익으로 명확히 구분됩니다. 단기적으로는 티켓 판매, 상품 판매, 현지 스폰서십을 통해 투어 비용을 회수하지만, 진짜 수익은 투어 이후에 발생합니다.
맨체스터 시티가 한국을 방문한 배경에는 넥센타이어와의 글로벌 스폰서십 계약이 있었고, 리버풀은 싱가포르 투어 중 싱가포르 국영 투자사가 대주주인 스탠다드차타드와 대규모 스폰서 재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스폰서 기업의 본거지 시장에서 직접 브랜드 가치를 입증하는 전략적 행보였습니다.
여기서 스폰서십이란 기업이 클럽의 유니폼이나 경기장에 자사 브랜드를 노출하고 그 대가로 수억 달러를 지불하는 계약을 말합니다. 톱클럽의 경우 메인 스폰서 계약 한 건이 연간 5천만 달러(약 650억 원)를 넘어서기도 합니다(출처: 유럽축구연맹).
제 경험상 경기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유니폼과 광고판에 빼곡히 새겨진 아시아 기업 로고들이었습니다. 한국, 일본, 중국 기업들의 브랜드가 유럽 최고 클럽들의 가슴팍을 장식하고 있었고, 이것이 바로 아시아 투어의 실질적 목적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 투어를 통한 브랜드 인지도 상승은 다음 시즌 중계권 협상에서도 핵심 변수로 작용합니다. 현지에서 직접 경기를 치른 클럽은 그렇지 않은 클럽보다 훨씬 높은 중계권료를 받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 팬층 확보를 위한 다층적 전략
유럽 클럽들의 아시아 팬 확보 전략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됩니다.
첫째, 아시아 선수 영입을 통한 현지화 전략입니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시절, 한국에서 맨유는 사실상 국가대표팀급 인기를 누렸습니다. 손흥민이 있는 토트넘은 현재 한국이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전자상거래 시장이 되었고, 이강인의 마요르카 영입 직후 유니폼 판매량이 3배 증가했습니다.
여기서 전자상거래 시장이란 온라인을 통한 상품 판매 규모를 의미하며, 유니폼, 기념품, 라이선스 제품 등이 포함됩니다. 빅클럽의 경우 연간 전자상거래 매출이 수천억 원에 달하는데, 아시아 선수 한 명이 이 시장 규모를 수백억 원 이상 늘릴 수 있습니다.
둘째, SNS를 활용한 현지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한국 선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능일, 삼일절, 광복절 같은 한국의 특별한 날을 챙기며 한국어로 응원 메시지를 전합니다. 선수들이 직접 한국어로 인사하는 영상도 정기적으로 업로드하면서 팬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있습니다.
셋째, 정기적인 오프라인 접점 확보입니다. 제가 직접 경기장에서 느낀 건, TV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의 차이가 엄청나다는 점이었습니다. 선수들의 속도, 패스의 정확도, 압박의 강도는 화면으로는 절대 온전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런 직접 체험이 팬들을 단순 시청자에서 열성 팬으로 전환시키는 핵심 동력이 됩니다.
쿠팡의 스포츠 투자 전략과 시장 변화
쿠팡이 토트넘 초청에 100억 원을 투자한 것은 무모한 도박이 아니라 정교한 계산의 결과였습니다. 두 경기로 10만 명의 관중을 동원해 티켓 수익만으로 투자금을 회수했고, 쿠팡플레이 신규 설치 45만 건, 총 접속자 300만 명을 기록하며 플랫폼 성장의 모멘텀을 확보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여기서 락인 효과(Lock-in Effect)란 고객이 한 번 특정 플랫폼에 익숙해지면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스포츠 중계는 정해진 시간에 실시간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팬들이 특정 OTT에 가입하면 장기 구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쿠팡의 스포츠 투자 전략은 다음과 같은 핵심 요소로 구성됩니다:
- 카라바오컵, 코파 델 레이, K리그 등 다양한 리그 중계권 확보
- 2025년부터 라리가 독점 중계 및 AFC 대회 중계권 추가 확보
- 직접 빅클럽 초청을 통한 오프라인 경험 제공
솔직히 제가 쿠팡플레이를 처음 설치한 것도 토트넘 경기 중계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 깔고 나니 다른 경기들도 자연스럽게 보게 되더라구요. 이게 바로 쿠팡이 노린 락인 효과입니다.
쿠팡의 또 다른 목적은 시청자층 확대입니다. 기존 쿠팡플레이는 여성 58%, 남성 42%로 여성 시청자 비중이 높았는데, 스포츠 콘텐츠를 통해 상대적으로 남성 팬이 많은 축구 시장을 공략하며 균형 잡힌 시청자 구성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존, 애플 TV, 유튜브 등 글로벌 OTT들이 NFL,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과 동일한 전략입니다.
유럽 빅클럽의 아시아 투어와 쿠팡 같은 현지 기업의 스포츠 투자는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클럽은 아시아 시장에서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장기 수익을 확보하고, 현지 기업은 스포츠 콘텐츠로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한국 축구 팬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를 더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되었고, K리그의 인기 상승이라는 긍정적 효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대기업들이 유럽 구단을 직접 인수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이미 인터 밀란, 레스터 시티, 발렌시아 등은 아시아 구단주가 운영 중이며, 이는 한국 선수와 지도자들의 유럽 진출 기회를 확대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경기장에서 느낀 유럽 축구의 수준은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로 가득했고, 이런 교류가 더 활발해진다면 한국 축구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